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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봉, 부모님은 벌통 지킴이가 되었다. 부모님이 돌보고 있는 벌통. 꿀벌을 공격하는 말벌 때문에 하루 종일 주변을 살펴야 한다.
ⓒ 한송영
평생 육체노동을 하며 자식들을 키운 부모님은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양봉을 배웠다. 달콤한 꿀을 기대하며 시작한 양봉은 말벌과 싸우고 벌에 쏘이면서 온종일 벌통 앞을 지켜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전남 영광군 부모님 댁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참 많은 일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정육。, 한정식 식당, 중화요리 식당, 떡집, 수산물 도소매업까지 다양하다. 고향이 전남 영광이다 보니 지금은 굴비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다(투잡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굴비도 간편식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고, 집에서 생선을 구울 때 나는 비린내를 싫어하는 분들도 많아 예전보다 굴비를 찾는 분들이 많이 줄었다).
내가 영광에 산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묻는다.
"아, 영광 굴비? 그럼 굴비 많이 먹겠네?"
그럴 때면 나도 웃으며 말한다.
"그래! 나 굴비집 딸이다!"
말은 유쾌하게 하지만 굴비 한 마리를 손질하고 엮고 포장하기까지 부모님의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나는 알고 있다. 부모님의 지난 세월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으로 버텨온 시간이었다.
예순에 배운 새로운 일, 양봉
▲ 벌통 주변을 지키는 부모님 부모님이 함께 또는 따로 매일 벌통 주변을 지키시는 지킴이
ⓒ 한송영
오랫동안 육체노동을 해온 부모님은 이제 조금이라도 덜 힘든 일을 하며 노후를 준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특히 내년이면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정년의 나이가 된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생활을 이어가야 할지 걱정이 더 많아진 듯했다.
아버지는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를 배우러 다녔다. 그중 하나가 양봉이었다. 부모님은 2025년 3월 26일부터 10월 20일까지 영광농업대학 양봉반 과정에 참여했다. 총 20회, 78시간의 교육을 받은 뒤 2026년 5월 부모님 댁 마당에 벌통을 설치했다.
처음에는 양봉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꽃이 피는 곳에 벌통을 두고 꿀벌을 잘 돌보면 달콤한 꿀을 얻을 수 있으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때 말렸어야 했을까. 그후 최근까지 부모님이 보내온 사진에는 벌통과 말벌, 그리고 무더위 속에서 벌통을 지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 벌통 옆에서 장대를 들고 걸어오는 어머니 사진 폭염 속에서 벌통 주변을 맴도는 말벌을 쫓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 한송영
특히 가장 큰 골칫거리는 꿀벌을 잡아먹으러 오는 말벌이었다. 부모님은 말벌이 벌통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수시로 주변을 살피고 직접 잡아야 했다. 작은 의자를 놓고 벌통 앞에 앉아 긴 장대로 말벌을 쫓는 것이 일상이 됐다.
올여름 더위가 어땠나. 가만히 앉아 있기조차 힘든 날이 많았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모자로 겨우 그늘을 만들고 땀을 흘리며 벌통 앞을 지켰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말벌이 나타날까 봐 외출해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밖에 나가서도 꿀벌 걱정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오곤 했다.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부모님을 또 다른 노동에 붙잡아 둔 것 같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9월 말 무사히 꿀을 거두셨으면
▲ 벌에 쏘여 손등이 퉁퉁 부었다. 부모님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자식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 한송영
지난 4일에는 아버지가 벌에 쏘였다. 손등이 퉁퉁 부어오른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했지만, 자식의 눈에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해온 손이다. 고기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고, 무거운 수산물을 나르고, 굴비를 엮고 포장했던 손이 이제는 벌통을 돌보고 말벌을 잡다가 부어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걱정과 함께 미안함이 밀려왔다. 자식들이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부모님께 이제는 힘든 일을 그만하시라고, 노후 걱정 없이 편하게 쉬시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로또 당첨을 바라게 된다. 부모님이 더는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게 된다.
▲ 방충복을 착용한 어머니 사진 보호 장비를 갖추고 꿀벌을 돌보는 어머니, 무엇보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꿀을 수확하기를 바란다.
ⓒ 한송영
오는 9월 말이면 부모님은 꿀을 수확할 예정이다. 폭염 속에서 말벌을 쫓고, 벌에 쏘여 손이 부으면서도 지켜낸 꿀이다. 올해 수확할 꿀에는 부모님의 땀과 걱정, 인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 같다.
꿀이 많이 나오고 맛도 좋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은 부모님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수확을 마치는 일이다.
부모님의 얼굴에 깊어지는 주름을 볼 때마다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실감한다. 평생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해온 부모님이 이제는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덜 걱정하며 살았으면 한다. 부모님이 말벌을 쫓아내며 지켜낸 올해의 꿀이 지난여름의 고생을 잊게 할 만큼 달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꿀보다 더 달고 편안한 날들이 부모님의 앞날에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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